정월대보름 – 단순한 꿈, 그 이상

한국에서는 음력 1월 15일에 두려움과 분노를 불에 태워보냅니다. 하지만 왜 새해를 세 번이나 기념할까요? 성민과 함께 정월대보름 축제의 현장으로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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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1월 15일은 한국인들에게 특별한 날이다. ‘정월대보름’이라고 부르는 이날은 설날(음력 1월 1일) 이후 처음 맞는 보름날로 상원, 혹은 오기일(烏忌日)이라고 한다. 한국의 조상들은 설날보다 이날을 더 특별하게 생각했는데, 음력 1월 1일부터 15일 동안 축제를 열었다. 이 기간 동안에는 빚 독촉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모두가 축제를 즐겼다. 이보다 좀 더 옛날에는 정월 대보름 이튿날을 실질적인 한 해의 시작으로 여겼다고도 한다.

대보름에는 부럼, 오곡밥, 약밥, 귀밝이술(정월대보름날 아침 일찍 마시는 술), 김과 취나물 같은 나물 반찬과 제철 생선 등을 먹으며 한 해의 건강과 소원을 빈다. 또한 고싸움, 석전(돌던지기 놀이)과 같은 행사와 다양한 놀이를 하는 것이 전통이다. 지역별, 마을별로 제사를 지내는 곳도 있으며, 대보름에는 한 해의 계획을 세우거나 한 해의 운수를 점치기도 하였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 다시금 축제가 시작됩니다.  |   Photographer Seong min Yun

 2023년 2월 5일 일요일, 음력으로 1월 15일, 우리는 새로운 정월대보름을 맞이하였다. 민족의 큰명절이니만큼, 각 지역에서는 다양한 행사들을 진행하였지만, 코로나가 창궐한 이후 4년동안이나 행사가 열리지 않았다. 올해가 되어 코로나 유행이 잦아들었고, 오랫만에 한국 각지에서 대보름 기념 행사가 진행되었다. 나는 부산에 살고 있으며, 사상 삼락공원에서 열린 행사에 방문하였다.

해가 지기 직전에.  | Photographer Seong min Yun

오후 5시, 하늘에는 주황빛 노을이 내려 앉고 있다. 부쩍 온화해진 날씨지만 아직 겨울의 냉기가 감돌고 있다. 따뜻하게 차려 입고, 가족들과 함께 행사장으로 떠났다. 몇 년 만에 열린 축제에   이곳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니 높게 쌓아 올린 나무더미가 보인다. 예부터, 대보름을 기념하여 한국인은 짚단과 생소나무 가지를 무더기로 쌓아 올린다. 이것을 ‘달집’이라 부르는데, 풍년과 행운을 기원하며 이 나무더미를 불태운다. 이것을 ‘달집태우기’라고 한다. 달집이 잘 타오를수록 마을이 태평하고, 그 해는 풍년이 될 것이라 사람들은 믿었다.

나무더미 주위에 모여 기다리는 사람들… | Photographer Seong min Yun

아직 초록빛이 감도는 소나무 가지들, 그 위를 둘러싼 여러 깃발들. 사람들 사이를 맴돌며 악기를 두드리는 풍물패들의 노래가 신명난다. 오랜만에 서로 마주하게 된 사람들은 정겹고 기대에 찬 표정으로 나무더미를 바라본다. 하루는 점점 막을 내리고, 시커먼 연기가 솟아오른다. 주위를 둘러보면 팔짱을 낀 채 떠오르는 보름달을 바라보고 있는 연인들, 눈을 감고 소원을 빌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아빠의 어깨위에 올라선 아이는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고 있다. 아직 무엇을 빌지 생각하지 않았던 나도 서둘러 올해의 바램을 떠올려본다.

 5시 50분, 열의에 찬 사람들의 환호소리와 함께 달집에 불이 붙기 시작한다. 화르륵- 화르륵- 바싹 마른 나뭇가지인지 빠르게 불타오르는 달집. 샛노란 불꽃이 나무와 짚단을 베어 물며 솟아오른다. 하늘 위로 자욱한 연기가 퍼져 나가고, 사람들은 무엇에라도 홀린 듯 그 광경을 지켜본다. 그 위로 어느새 둥그런 달이 빛을 발하고 있다. 어두운 하늘 한 가운데, 누군가가 손전등을 켜 놓은 듯 제 혼자 훤하다.

…저녁 6시, 불이 붙기 시작합니다 | Photographer Seong min Yun

몇몇 사람들이 자신들의 속옷을 불길 사이로 집어 던진다. 낡은 속옷을 태우면 근심과 고난 또한 불타 없어진다는 미신 때문이다. 이글거리는 나무와 떠오르는 불티를 바라보며 올해도 건강하길, 내일도 행복하기를 마음속으로 읊조린다. 최근 몇 년간 코로나로 인해 힘들었지만, 우리는 모든 역경을 버텨냈다. 그 덕분일까, 달집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인생에 대한 의연함과 성숙함이 묻어나온다. 앞으로도 우리의 삶은 수많은 질문과 어려움을 마주하겠지만, 괜찮다. 늘 그래왔듯 우리는 잘 살아낼 것이니까. 그 모든 불안과 노여움을 지금 이 자리에서 불에 태워 보낸다. 모두의 소원을 담아서, 훨훨- 훨훨-

한껏 가벼워진 기분이 든다. 내일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Seong min Yun

부산 | 대한민국

성민, 혹은 지마는 호기심 넘치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한국인 대학생입니다. 다른 나라의 언어 배우기를 너무나 좋아하고, 영어와 일본어, 프랑스어, 그리고 물론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압니다. 지마는 화가이자 작가입니다. 그는 사랑과 꽃을 그려내고, 삶에 대한 이야기를 쓰죠. 세상을 조금 더 알록달록하게 만드는 것이 지마의 꿈입니다. 그와 함께라면, 세상을 조금 더 유쾌하게 바라볼 수 있을 거에요.

2 Comments

  1. 정월 대보름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네요.. 좋은글 감사해요

Kay Lee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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